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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본군 장교 8명이 민간인으로 변복하고 왕비 시해 지휘
━ [근현대사 특강] 왕비 시해 사건의 진실 ① 1890년대에 촬영된 경복궁 광화문 전경이다. 1895년 10월 8일 새벽 행동대는 긴 사다리를 놓고 담을 넘어 안에서 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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항일투쟁 촉발 우려, 왕비 사진을 궁녀로 둔갑 시켰다
━ [근현대사 특강] 왕비 시해 사건의 진실 ② 왕비 민씨(명성황후)를 시해한 일본인들은 살해 현장에서 확인용으로 사용한 사진에 ‘궁녀’란 이름을 붙여 유포하였다. ‘궁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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갑오개혁에 가린 일본 침략주의 어두운 그림자
━ [근현대사 특강] 청일전쟁, 은폐된 진실 ② 1894년 12월 8일, 이노우에 가오루 공사가 고종과 민비를 함께 알현하는 장면. 『풍속화보』 정청도회(征淸圖繪) 제5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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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본군, 청과 싸우기도 전에 경복궁 담부터 넘었다
━ [근현대사 특강] 청일전쟁, 은폐된 진실 ① 130년 전 갑오년은 조선 정부 최대 수난의 해였다. 연초에 전라도 동학 농민군이 전봉준의 지휘로 고부 군수 조병갑의 탐학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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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조선·미국 친해져선 안 돼” 청·일의 개화정책 방해 공작
━ [근현대사 특강] 조미수교의 역풍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일본은 1868년 9월 메이지 왕정복고로 근대국가 만들기에 나섰다. 조선은 같은 시기에 대원군의 쇄국으로 ‘서양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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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월간중앙] 최초공개 | 흥선대원군 외손녀이자 이회영 며느리 조계진의 일제 강점기 회상
“백범은 내게 영친왕을 알아볼 수 있느냐고 물었다” ■청나라서 귀국한 대원군 외면한 고종… “두 사람은 말 한마디 없었다” ■백범, 조계진에게 “사실은 내가 국모 살해한 자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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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사대당은 수구, 독립당은 개화” 일제, 정치 공작 위해 구분
━ [근현대사 특강] 일제 식민주의가 남긴 멍에 〈상〉 1878년 7월 28일 자 『도쿄니치니치신문(東京日日新聞)』의 사설은 “우리나라(일본) 오늘의 정치를 논하는 사람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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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신복룡의 신 영웅전] 위안스카이의 그림자
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도봉산에 올라가면 망월사(望月寺)가 있다. 탁 트인 풍광도 좋지만, 구한말 청국 공사 위안스카이(袁世凱·1859~1916)의 대웅전 현판도 볼만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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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·미 수교 백년사
미국은 1846년에 「멕시코」로 부터 「캘리포니아」지방을 사들임으로써 태평양으로 진출하기 시작하여 이후 우리 극동삼국과 관계를 맺게되었다. 이에 조금 앞서 영국이 아편전쟁의 결과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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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100년전 거울로 오늘을 보다] 9. '조선책략'의 허와 실(허동현 교수)
저는 '조선책략'이 미국에 대한 잘못된 허상을 전파하고 친미파를 길러내는 발판 역할을 함으로써 미국이라는 제국주의 국가에 침략의 길을 열어준 '트로이 목마'였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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전제왕권 집착한 고종, 나라를 열강의 먹이로 내놓다
청일전쟁의 참화 청일전쟁이 벌어진 평양 선교리의 모습이다. 고종이 청국군의 파병을 요청한 뒤 이 땅에서 청일전쟁이 벌어졌다. 사진가 권태균 개국군주 망국군주고종⑧ 외세 의존의 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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왕비 한마디에 채광권 알렌에 넘어가
1895년 미국인 실업가 모스(J. R. Morse)는 평안북도 운산군 일대 금광 채굴권을 획득한다. 이후 운산금광은 매년 수백만원어치의 금을 토해내며, 동양 최대의 금광으로 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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청나라의 ‘대원군 납치 3년’ 시진핑 외교에 어른거린다
━ [박보균의 현장 속으로] 리더십의 결정적 순간들 - 19세기 말 중국의 한반도 무력 개입 중화(中華)는 우월감이다. 그 의식에 인접국에 대한 간섭이 있다. 중국 외교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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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백가쟁명:유주열] 영락제와 쇼군 이에야스
베세토(BESETO)의 경험 한때 베세토라는 말이 유행했다. 베이징-서울-도쿄의 앞 글자를 딴 조어이다. 한국 사람으로 베이징과 도쿄에 3년 이상 살면서 베세토를 경험할 수 있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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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백가쟁명:유주열] 마지막 황제(溥儀)와 “최종전쟁론”
“울지 마 곧 끝난다” 중국의 중심은 베이징이다. 그리고 베이징의 중심은 자금성이다. 경산(景山)에 올라 자금성을 내려다보면 나무는 없고 고래 등 같은 황금기와의 물결을 이룬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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공론화 없이 추진한 개화, 일본의 침략 야욕에 말려들다
【총평】 ? 1873년 고종이 친정을 선포하면서 흥선대원군이 물러나고 민씨 일족이 정권을 잡게 되었다. 민씨 정권은 서원을 부분적으로 복구하면서 유생들을 포섭했으며, 조세를 감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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깨알같이 기록한 대한제국 외교자료, 130년만에 공개
월남 이상재의 종손 이상구씨가 기증한 '미국공사왕복수록'(美國公私往復隨) 표지. [사진 문화재청] '미국공사왕복수록'의 내부. 미국 정부 관계자들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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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이덕일의 事思史] 조선 왕을 말하다 : 요약 (56)
수신사 김홍집의 행차 온건개화파 김홍집은 1880년 일본에 다녀오면서 황준헌의 ?조선책략?을 가지고 와 척사파의 공격 표적이 되었다. 사진가 권태균 ? 고종은 강화도조약 체결 2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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공론화 없이 추진한 개화, 척사파 설득 못해 실패
개국군주 망국군주 고종⑤ 임오군란 고종은 강화도조약 체결 20일 후인 재위 13년(1876) 2월 수신사(修信使) 김기수(金綺秀)를 일본에 파견했다. 김기수는 견문록 일동기유(日東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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고종, 자기 날개 자르는 줄도 모르고 개화파 제거
우정총국 건물 서울 종로구 견지동에 있으며 그 옆에 조계사가 있다. 개화당은 한국 최초의 우편행정기관인 우정총국의 낙성식 연회를 정변의 계기로 삼았다. 사진가 권태균 개국군주 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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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정총국
땅거미가 어둡게 깔리기 시작한 저녁 서울 전동 골목은 거마를 몰아 회집하는 빈객들로 붐비기 시작했다. 미국공사, 영국총영사, 청국령사, 일본공사관서기관, 박영효, 민영익 윤치호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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민영익 등 보빙사 큰절로 禮 갖춰
1883년 5월 특명전권공사 푸트가 조선으로 부임하자, 그해 7월 고종은 미국으로 보빙사(報聘使:답례 사절)를 파견한다. 보빙사 전권대신에 임명된 인물은 24세 청년 민영익. 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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역사에서 사라진 ‘갑진왜란’… 41년 최장기 항전의 도화선
━ [대한제국 120주년] 다시 쓰는 근대사 갑진왜란과 국민전쟁 1904년 2월 8일 오후 4시 일본 해군 제3전대가 인천의 팔미도 앞바다에서 러시아의 소형 포함 ‘카레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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동상리몽 한말 국교 23년「상일」미국을 …협사조로 믿어|최초로 수교, 최초로 단교한 서양국
한국과 미국이 정식으로 수호통상조약을 맺은 것은 1882년이었다. 어느덧 두 나라 사이의 관계는 1세기에 가까운 역사를 갖고있다. 그동안 두 나라는 어떠한 관계를 유지해 왔을까?